공간의 표정과 온도를 만드는 힘 - 재료 Material

"공간은 재료를 품는다."

이 짧은 문장에는 건축과 인테리어를 넘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몸으로 느끼는 수많은 감각적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재료는 단순히 벽을 덮는 마감재나 구조를 보호하는 기능적 요소를 넘어, 공간의 분위기, 표정, 심지어 그 공간이 전달하는 온기까지 결정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결국 재료는 공간의 ‘피부’이자 ‘목소리’이며, 때로는 우리와 공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가장 직접적인 매개체가 됩니다.

그렇다면 왜 공간은 재료를 ‘품어야’ 하는 걸까요? 단순히 덧씌우는 것과 품는 것 사이에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걸까요?

앞으로 포스팅 시리즈에서는 건축과 재료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 안에 담긴 풍부한 의미와 가능성을 살펴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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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는 공간의 언어다

공간을 처음 마주할 때, 우리는 무엇을 통해 그 공간을 읽을까요?
빛, 소리, 냄새...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질감’과 ‘온도’입니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 부드러운 목재 바닥, 따뜻한 패브릭 소파. 이처럼 재료는 눈으로 보기도 전에 손끝으로, 피부로 느껴집니다. 

재료가 가진 색, 결, 거칠기, 반사율 등은 공간의 첫인상을 좌우합니다.

한 가지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썼느냐에 따라 공간의 성격은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같은 콘크리트라도 거칠게 남긴 노출 콘크리트는 거칠고 투박한 인상을 주지만, 미세하게 폴리싱된 콘크리트는 매끄럽고 세련된 인상을 남깁니다.이처럼 재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며, 설계자가 의도한 공간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


마감재를 넘어서는 재료의 존재감

과거에는 재료가 공간에 적용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단순했습니다. 구조를 완성하고, 기능을 다한 뒤, 그것을 감추거나 보호하기 위한 ‘마감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재료는 자주 숨겨지고, 덧입혀졌습니다. 기능적이지만 표현의 차원에서는 부차적인 위치였죠.하지만 현대 건축,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울름 조형대학(Ulm School of Design)이나 스위스 국제 양식(Swiss Style)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능이 곧 형태"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재료 자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것이 공간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게 됩니다.

여기서 재료는 더 이상 마감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의 ‘표정’ 그 자체가 됩니다. 

벽은 벽 자체로, 바닥은 바닥 자체로, 천장은 천장 자체로 말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 그리고 그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공간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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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가 만드는 공간의 온도

"이 공간은 따뜻하다", "이 공간은 차갑다"는 느낌은 어디서 올까요?
물론 조명이나 색감의 영향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재료에서 비롯됩니다.

차가운 재료

금속, 유리, 대리석은 시각적으로 차갑고 단단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재료들은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정제된 세련미를 표현합니다.

중립적 재료

콘크리트, 석재, 테라조는 온도감 측면에서 중립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주변 요소들에 따라 따뜻하거나 차가운 분위기로 변화할 수 있는 적응력이 강점입니다.

따뜻한 재료

목재, 직물, 흙은 공간에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자연 소재들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어 휴식과 치유의 공간에 적합합니다.

재료의 온도감은 물리적 온도뿐만 아니라 심리적 온도감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과 따뜻한 목재 바닥은 같은 실내 온도에서도 전혀 다른 체감 온도를 만들어냅니다. 

각 재료는 고유의 물성으로 공간의 ‘온도’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이 온도는 단순히 물리적인 차가움이나 따뜻함을 넘어서, 감정적·심리적인 온도까지 결정짓습니다. 어떤 공간에 들어섰을 때 "포근하다"거나 "왠지 긴장된다"고 느끼는 것은, 재료가 우리 몸과 감각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마감재를 넘어서는 재료의 가치

기능적 역할

많은 경우 재료는 단순히 벽과 바닥을 덮는 마감재로만 인식됩니다. 내구성, 관리 용이성, 비용 등의 실용적 측면만 고려되어 재료의 진정한 가치가 제한됩니다.

창의적 한계

재료를 단순한 마감재로 볼 때 공간 디자인의 창의적 가능성이 제한됩니다. 표준화된 접근법은 독창적인 공간 창출의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감성의 부재

재료의 감성적 가치를 간과하면 공간은 차갑고 무미건조해집니다. 인간의 감각과 정서에 호소하는 공간의 본질적 목적이 퇴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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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가 공간의 에너지를 제어하는 방법

빛의 제어

재료의 반사율, 투과율, 흡수율에 따라 공간의 빛 환경이 달라집니다. 반사성이 높은 유리나 금속은 공간을 밝게 만들고, 목재나 직물은 빛을 흡수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소리의 제어

단단한 표면은 소리를 반사하고, 부드러운 재료는 흡수합니다. 공간의 용도에 맞게 재료를 선택하여 소음을 제어하거나 음향을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온도의 제어

열전도율이 다른 재료들은 공간의 온도 환경에 영향을 미칩니다. 목재는 단열 효과가 좋아 온기를 유지하고, 금속은 열을 빠르게 전달합니다.

에너지 흐름

동양 철학에서는 재료가 기(氣)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고 믿습니다. 자연 소재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흐르게 하고, 인공 소재는 때로 에너지를 막거나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감성적인 의도와 재료의 선택

디자인 의도

공간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감정

재료 선택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재료 조합

적용 방식

선택된 재료를 공간에 구현하는 기술적 방법

사용자 경험

재료를 통해 구체화된 감성적 경험의 총체

재료 선택은 디자이너의 감성적 의도를 물리적 형태로 구현하는 과정입니다. 명상을 위한 공간에는 자연 소재가, 창의적 작업 공간에는 다양한 질감의 혼합이, 럭셔리한 공간에는 고급 마감재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재료는 공간의 감성적 목표를 달성하는 핵심 도구입니다.



기능적 효율성과 감성성의 조화

기능적 요구사항

공간이 충족해야 할 기본적인 기능적 필요와 실용적 측면을 정의합니다. 내구성, 관리 용이성, 비용 효율성 등이 이 단계에서 고려됩니다.

감성적 목표

공간이 사용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설정합니다. 편안함, 활력, 집중, 휴식 등 공간의 주요 감성적 키워드를 정립합니다.

균형점 찾기

기능과 감성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최적의 재료 조합을 탐색합니다. 때로는 기능을 위한 타협이, 때로는 감성을 위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통합적 적용

선택된 재료를 공간에 적용하여 기능과 감성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환경을 구현합니다. 디테일한 처리와 마감이 전체적인 조화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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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트렌드와 향후 발전 가능성

지속가능한 재료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재생 가능하고 생분해성이 있는 재료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나무, 코르크, 재활용 소재 등이 주목받고 있으며,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제공합니다.

스마트 재료

기술과 재료의 융합으로 환경에 반응하는 지능형 재료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도료, 자가 치유하는 콘크리트, 빛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표면 등 혁신적인 재료들이 공간 디자인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고 있습니다.

지역성의 재발견

글로벌 표준화에 대한 반발로, 지역 고유의 재료와 공법을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한 재료 사용은 장소성이 강한 공간을 만들고, 문화적 지속가능성에도 기여합니다.



결론: 재료는 공간의 영혼이다

재료에 대한 인식 전환

재료를 단순한 마감재가 아닌 공간의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합니다.

재료의 깊은 이해

각 재료의 물리적, 심리적, 문화적 특성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의도적인 선택

공간의 목적과 정체성에 맞는 재료를 의도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재료는 공간의 피부이자 뼈대, 그리고 영혼입니다. 공간은 재료를 통해 말하고, 느끼고, 숨쉬며, 사용자와 교감합니다.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각적인 선택은 평범한 공간을 특별한 경험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의 열쇠입니다. 

공간이 재료를 품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포용이 아닌, 생명력과 정체성을 향한 근본적인 갈망입니다.

우리가 좋은 공간에 있을 때 느끼는 평온함, 혹은 설렘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료를 어떻게 품고 다루었는가에 대한 결과입니다. 재료는 기능을 넘어 감성을 담고, 시간과 함께 깊어집니다. 그것이 진정한 공간의 힘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촉감’을 갈망할 것입니다. 손끝으로 만지고, 피부로 느끼는 경험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간은 앞으로도 재료를 품어야 합니다. 재료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온도를 전하고, 사람과 공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간이 재료를 품는다는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을 품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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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이미지 - Pexels,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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