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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언제부터 눈을 위한 예술이 되었을까?
건축은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닌, 모든 감각을 통해 경험되는 총체적 예술입니다. 시각을 넘어 촉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공간을 이해할 때, 우리는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건축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감각적 접근은 현대 건축에서 점차 주목받고 있으며, 인지과학과 디자인 트렌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핀란드의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주니 페이논(Juhani Pallasmaa)는 그의 대표 저서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The Eyes of the Skin)』에서 시각 중심의 건축을 비판하고, 다중 감각에 기반한 건축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페이논의 이론을 바탕으로 감각적 건축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삶의 질을 높이고, 건축의 본질에 가까이 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니 페이논(Juhani Pallasmaa) 소개
핀란드 건축계의 거장
헬싱키 공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이자 이론가로, 북유럽 건축의 정신성과 감각적 측면을 강조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출간
1996년 출간된 이 저서는 현대 건축의 시각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다감각적 접근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건축 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
다중 감각적 건축 담론의 선구자
건축을 경험하는 신체와 모든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건축 설계와 비평에 인문학적 깊이를 더한 현대 건축 이론의 핵심 인물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핵심 내용
시각 중심주의 비판
페이논은 현대 건축이 지나치게 시각적 효과에 치중하여 다른 감각적 경험을 소외시키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는 이것이 인간의 총체적 경험을 제한하고 건축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비판합니다.
촉각의 재발견
저자는 특히 피부로 보는 건축, 즉 촉각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닌, 신체 전체로 감지하고 느끼는 건축적 경험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체성과 감각 통합
페이논은 진정한 건축 경험은 모든 감각이 통합된 신체적 경험이라고 주장하며,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합한 설계 접근법을 제안합니다.
시각의 확장과 한계
시각 중심의 근대 건축에 대한 비판
현대 건축은 근대 이후 기능주의와 기술의 발전을 거치며 점점 시각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렌더링 이미지와 평면도, 3D 모델링이 건축의 언어를 점령하고, 감각적 경험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페이논은 이를 “건축이 눈을 위한 시각적 대상이 되었을 뿐, 몸을 위한 장소가 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유명한 표현 “건축은 눈을 위한 장치”라는 사고를 비판하면서, 건축이 인간의 몸 전체와 감각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눈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보다 촉각, 청각, 후각을 먼저 발달시키며, 이런 감각들은 우리가 공간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유리 파사드의 양면성
현대 건축에서 유리 파사드는 시각적 확장성과 개방감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촉각적 경험을 제한하고 공간의 깊이감을 상실시키는 양면성을 가집니다. 이러한 투명성은 시각적 매력을 주지만 다른 감각적 경험을 빈약하게 만듭니다.
디지털 스크린 건축의 등장
빌딩 파사드에 설치된 대형 디지털 스크린은 시각적 자극을 극대화하지만, 건축의 물리적 실재감과 감각적 깊이를 약화시킵니다. 이는 페이논이 경계한 '이미지 중심 문화'의 극단적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각의 충돌 사례
시각적으로는 화려하지만 음향적으로 불편한 공간, 외관은 자연 친화적이나 실제 체험은 인공적인 건물 등 시각과 다른 감각이 충돌하는 사례들은 다감각적 설계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촉각 - 공간을 만지는 감각
온도와 질감
돌, 나무, 금속 등 다양한 재료의 고유한 온도와 질감은 건축 공간에서 중요한 촉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페이논은 이러한 물질적 특성이 공간의 정체성과 기억에 깊이 관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신체적 접촉점
문손잡이, 계단 난간, 바닥재 등 신체가 직접 접촉하는 요소들은 건축물과 인간 사이의 중요한 대화 지점입니다. 이러한 접촉점의 질감과 형태는 공간 경험의 친밀도를 결정합니다.
무게감과 중력
건축 요소의 무게감과 중력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신체가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중요한 촉각적 요소입니다. 구조물의 안정감과 무게감은 신체적 공감을 통해 경험됩니다.
청각적 건축 - 울림과 침묵의 건축
우리는 공간을 ‘듣씁니다.’ 좁은 골목에서 메아리치는 발소리, 높은 천장의 성당에서 퍼지는 잔향, 작은 방에서 들리는 속삭임은 공간의 구조와 재료, 비례를 반영합니다. 페이논은 건축에서의 청각적 경험이 시각보다 훨씬 더 정서적이고 무의식적이라고 말합니다.
루이스 칸의 건축을 떠올려보면, 그가 설계한 도서관이나 강당은 ‘침묵이 울리는 공간’으로 유명합니다. 그 안에서는 소리의 존재와 부재가 함께 건축의 일부분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음향적 감수성은 건축이 단순히 기능적이거나 시각적으로 뛰어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간의 소리
건축 공간에서의 반향, 흡음, 공명은 그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
청각적 경험
발자국 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등 일상적 소리가 만드는 공간감
침묵의 건축
소음을 차단하고 고요함을 제공하는 공간의 치유적 가치
음향적 디자인
의도적인 소리 경험을 설계하는 음향 건축의 원리와 적용
페이논은 "모든 건축 경험은 다감각적이며, 공간의 특성은 우리의 귀를 통해서도 측정된다"고 강조합니다. 교회의 장엄한 울림, 도서관의 고요함, 시장의 활기찬 소음은 각 공간의 본질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종교 건축에서 음향적 특성은 신성한 경험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왔습니다.
후각과 미각 - 기억을 자극하는 공간의 향기
건축 재료의 향기
나무, 가죽, 종이, 석재 등 자연 재료가 발산하는 고유의 향은 공간의 정서적 분위기와 기억 형성에 깊이 관여합니다. 페이논은 이러한 자연 재료의 향이 공간에 진정성과 시간성을 부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의도적 향기 디자인
호텔, 상업 공간, 테마파크에서는 특정 향을 의도적으로 주입하여 공간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방문객의 경험을 조절합니다. 이는 현대의 '감각 마케팅'으로 발전했지만, 인공적 향의 과용은 진정한 장소성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향기와 건축적 기억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특정 공간의 향은 강력한 기억의 트리거가 됩니다. 고향 집의 향, 학교 교실의 분필 향, 오래된 도서관의 종이 향 등은 건축 경험의 중요한 부분으로 오랫동안 기억됩니다.
실제 적용 사례 - 다감각적 건축 공간
캄피 교회 (핀란드 헬싱키)
페이논의 영향을 받은 '침묵의 교회'는 타원형 목재 구조로, 도심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부에 고요한 음향 환경을 조성합니다. 원목의 따뜻한 촉감과 향기, 간접광의 부드러운 확산이 명상적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테르메 발스 스파 (스위스)
피터 줌터의 이 스파 건물은 지역 채석장의 석재를 사용해 촉각적 경험을 극대화했습니다. 물소리의 반향, 수증기, 온도 변화, 석재의 차가운 촉감 등 모든 감각이 통합된 다감각적 건축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솔크 연구소 (미국 캘리포니아)
루이스 칸의 이 건물은 콘크리트의 질감, 물의 흐름, 바다와 하늘의 확장감, 그리고 정교한 음향적 설계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입니다. 특히 중앙 광장의 물길은 시각, 청각, 촉각적 경험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감각적 건축이 주는 삶의 질
페이논은 다중 감각을 고려한 건축이 인간의 존재 방식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오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진정한 건축은 오감을 통해 존재와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정서에 공감하는 건축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 병원에서 아이들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시각적으로 친근한 색채, 따뜻한 촉감의 소재,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향기를 조합하는 설계는 감각적 건축이 건강과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 건축의 다감각적 트렌드와 한계
ESG와 감각적 지속가능성
친환경 건축은 시각적 녹색화를 넘어 촉각, 후각 등을 포함한 진정한 자연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웰니스와 다감각 디자인
건강 중심 건축은 스트레스 감소, 치유 효과를 위한 감각적 풍요로움을 추구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감각 확장
AR/VR 기술은 새로운 감각 경험을 창출하지만 신체적 경험의 본질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감각 경험의 표준화 문제
글로벌 건축의 획일화는 지역적 감각 경험의 다양성을 위협합니다.
미래를 위한 제언 및 결론
디자이너를 위한 다감각적 접근법
시각적 스케치나 렌더링을 넘어, 소리, 촉감, 향기 등을 포함한 총체적 경험 설계가 필요합니다. 재료 샘플, 음향 모델링, 가상현실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모든 감각을 고려한 디자인 프로세스를 개발하세요.
페이논 이론의 현대적 의의
디지털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페이논의 다감각 이론은 기술과 인간성의 균형을 찾는 나침반이 됩니다. 그의 이론은 단순한 건축 철학을 넘어 인간 중심 디자인의 핵심 원리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감각의 민주화와 포용적 디자인
다감각적 접근은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포용적인 공간을 만듭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칙과 다감각적 경험 설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페이논의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단순한 건축 이론을 넘어, 현대 사회가 잃어가는 감각적 풍요로움을 회복하라는 인문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감각 경험 빈곤 속에서, 그의 다감각적 접근법은 건축과 디자인의 본질적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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