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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전환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의 급감, 도시 생태계의 붕괴는 모두 인간 이외의 존재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할 필연성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멀티스피시스 디자인(Multispecies Design)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외 생명종들과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디자인의 중심에 두는 실천적, 철학적 접근 방식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의 공존을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종들을 위한 디자인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인간-비인간 공존 패러다임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인간만을 위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물종과의 공존을 고려하는 새로운 디자인 개념입니다. 이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합니다.
디자인 패러다임의 전환
현대 디자인 분야에서 점차 중요해지는 이 개념은 기존 디자인의 한계를 넘어 더 포용적이고 생태학적인 접근을 추구합니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생태 위기 시대의 새로운 상상력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등 생태적 위기 속에서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새로운 상상력과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한 창의적 대응이자 필수적인 전환입니다.
철학적 배경 -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와 생태적 전환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단순한 디자인 트렌드가 아닌 존재론적 전환(ontological turn)을 수반한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근대성이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것 자체가 문제였음을 지적합니다. 라투르와 함께 거론되는 안나 츠징(Anna Tsing),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등의 사상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동시에, 디자인의 윤리적 지평을 확장할 것을 제안합니다.
관계적 존재론
하라웨이와 라투르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모든 존재의 상호 연결성 인식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
인간/비인간, 주체/객체, 자연/문화 등의 경계 허물기
데카르트적 이원론 비판
근대 서구 철학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 도전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의 철학적 기반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가 상호의존적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는 인식에 있습니다.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좋게 세계를 만드는 실천’으로서의 공-생산(sympoiesis)을 말하며,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윤리적·정동적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철학은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이 단지 동물 보호나 식물 존중을 넘어서, 세계 안에서의 복잡한 얽힘(entanglement)을 수용하는 태도로 발전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은 디자인 실천에 있어 자연과 기술, 인간과 동물 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합니다. 이는 디자인의 대상과 수혜자를 인간에서 모든 생명체로 확장하는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멀티스피시스 디자인 원칙과 접근법
공존(Co-existence)
인간과 비인간 종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디자인 환경 조성
순환성(Circularity)
물질과 에너지의 지속가능한 순환을 고려한 설계
상호작용(Interaction)
종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와 소통을 촉진하는 디자인
윤리성(Ethics)
비인간 생명체의 권리와 에이전시를 존중하는 접근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의 핵심 원칙은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이는 디자인 과정에서 동물, 식물, 미생물 등 다양한 생명체의 필요와 행동 패턴을 고려하는 접근법을 요구합니다. 또한 비인간 생명체들이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디자인된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에이전시를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멀티스피시스 디자인 - 사례로 살펴보는 공존의 실험
스튜디오 오더(Studio Ossidiana) – ‘Bird Pavilion
더 디자이너스 아코드 – ‘Bee Hotels’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 밀워키 아트 뮤지엄의 ‘생체적 구조
공생적 가구·제품 디자인 사례
마이셀리움 브릭
버섯 균사체를 활용한 친환경 건축 자재로, 생분해성을 가지면서도 견고한 구조를 제공합니다. 살아있는 재료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종간 공유 가구
인간과 반려동물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가구 시스템. 각 종의 행동 패턴과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다기능적 디자인을 특징으로 합니다.
식물 통합 인테리어
실내 공간에 식물의 생장과 번식을 적극 지원하는 가구와 조명 시스템. 식물의 광합성과 생장 주기를 고려한 디자인으로 인간-식물 공생을 촉진합니다.
이러한 공생적 제품 디자인은 단순히 환경 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비인간 생명체와 인간이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를 구축합니다. 이는 생명체의 생활 주기와 행동 패턴을 디자인 요소로 적극 통합하는 혁신적 접근법입니다.
예술·전시의 멀티스피시스적 디자인시도
비인간 지구 전시
2022년 핀란드 디자인 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로, 다양한 비인간 생명체와의 관계를 재고하는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관람객들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생태계 설치물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관계성을 경험했습니다.
미생물 협업 바이오아트
미생물과 인간 예술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바이오아트 작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의 존재와 역할을 가시화합니다. 이들 작품은 종 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창작 방식을 제시합니다.
인공 생태계 프로젝트
식물, 곤충, 미생물이 공존하는 인공 생태계를 갤러리 공간에 구현한 프로젝트들은 관람객들에게 멀티스피시스 관계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예술적 시도들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새로운 관계 모델을 실험하는 장이 됩니다. 예술가들은 기술과 생물학을 결합하여 종간 협업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생명체와의 공존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건축의 언어로 말하는 공존 - 멀티스피시스 건축의 가능성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이 건축으로 확장될 때, **건축은 더 이상 ‘인간을 위한 피난처’라는 전통적 정의에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건축은 다양한 생명 존재들이 서로 교차하며 살아갈 수 있는 ‘생명 기반 인프라(life-support infrastructure)’로 재정의됩니다. 이는 단순히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거나, 녹색 건축 인증을 받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바이오리셉티브 디자인(Bioreceptive Design)
건축물의 외피를 수직 정원으로 설계하여 조류, 곤충, 식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디자인
비인간 감각 중심의 디자인
빛과 음향의 사용을 생명체의 감각 체계에 맞추는 비인간 감각 중심의 디자인등은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영역
주변 생태계와 공유하는 설계
하수 처리, 폐열 회수 시스템을 통해 주변 생태계와 에너지와 물의 순환 고리를 공유하는 설계
이러한 전환은 건축 설계 프로세스에도 변화를 요구합니다. 다종 생명체의 존재와 감각을 ‘클라이언트’로 고려하는 발상, 이를 위해 생물학자, 생태학자, 동물행동학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단지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건축가의 윤리적 상상력과 책임의 확장을 요구하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건축·공간에서의 멀티스피시스 전환
그린 인프라 통합
도시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건축적 접근
종 특화 건축 요소
새와 곤충을 위한 특수 설계된 건물 구조
생태적 접합부 디자인
야생 생태계와 인간 환경의 연결 지점 설계
생태계 서비스 설계
물, 공기, 토양의 순환을 고려한 건축 계획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의 건축적 적용은 인간만을 위한 공간에서 다양한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그린루프와 벽면 녹화는 도시 속 생물 서식지를 제공하며, 건물 외피에 설치된 새나 곤충을 위한 구조물은 도시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킵니다.
또한 비오톱(Biotope)과 같은 생태 공간을 건축물과 통합하는 시도는 도시 생태계의 연결성을 높이고,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건축을 단순한 인공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태계의 일부로 재정의합니다.
멀티스피시스 도시 디자인 - 미래적 비전
종 다양성 기반 도시계획
- 도시 내 동식물 인구통계 데이터베이스 구축
- 비인간 종의 이동경로와 서식패턴 분석
- 종 다양성 증진을 위한 도시계획 가이드라인
미시적 생명체 인프라
- 미생물, 곰팡이 등 미시적 생명체를 위한 공간 설계
- 토양 생태계 건강성 증진을 위한 도시 인프라
- 생물학적 정화 시스템을 활용한 도시 환경 개선
공정한 도시생태계 디자인
- 취약 생물종을 위한 우선적 서식지 보호 및 복원
- 멸종위기종 회복을 위한 도시환경 개선 프로그램
- 인간-비인간 종 간의 공정한 공간 분배 전략
미래 도시계획에서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단순한 녹지 조성을 넘어 도시 전체를 다양한 생명체의 서식지로 재구성하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는 도시 내 모든 생명체의 존재와 필요를 인정하고, 이들의 번영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신 기술을 활용한 종 다양성 모니터링 시스템과 데이터 기반 도시계획은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가 공존하는 더 지속가능한 도시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쟁점과 한계, 그리고 과제
가치 충돌의 문제
인간의 필요와 비인간 종의 필요가 상충할 때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 어떤 종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 부재.
기술적 한계
비인간 종의 필요와 행동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론과 기술의 부족. 종 간 소통의 근본적 한계.
교육 시스템의 변화 필요
기존 디자인 교육이 인간 중심적 관점에 기반. 다학제적이고 생태학적 관점을 통합한 새로운 디자인 교육 커리큘럼 개발의 필요성.
정책적 지원 부족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을 장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프레임워크의 부재. 새로운 규제와 인센티브 시스템 개발 필요.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인간 중심적 가치 체계와 경제 논리 속에서 비인간 종의 필요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또한 비인간 종의 필요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적 한계도 존재합니다.이러한 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교육과 실무에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며, 다양한 학문 분야(생태학, 생물학, 철학 등)와의 협업을 통한 통합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결론 - 더불어 살아가는 디자인을 향하여
확장된 디자인 실천
모든 생명체를 위한 포용적 디자인 방법론 개발
다학제적 협업
디자이너, 생태학자, 생물학자, 철학자 간의 협력 강화
교육의 변화
생태학적 감수성과 종 다양성을 고려한 디자인 교육
지속가능한 미래
인간과 비인간 종이 함께 번영하는 세계 구축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인류와 지구 생태계가 직면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적인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이는 디자인의 대상과 수혜자를 인간에서 모든 생명체로 확장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다양하고 회복력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은 이제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책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은 우리가 다른 생명체들과 맺는 관계를 재정의하고, 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미래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 함께 그리는 존재들의 미래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우리가 이제껏 간과해왔던 존재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열어가는 디자인 실천입니다. 이 접근은 인간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공간과 구조를 통해 창조하는 일입니다.
지금, 기후 위기와 생태계의 붕괴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들과 함께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과 어떻게 함께 공간을 구성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단순한 해법이 아닌, 감각의 전환, 윤리의 재구성, 상상의 재도전속에서 생겨납니다. 멀티스피시스 디자인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으며, 디자인의 언어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말하는 새로운 문법입니다. 이 문법을 배우는 일은 이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동시에 함께 꿈꿔야 할 미래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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