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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사에서 고려시대는 약 500년(918~1392) 동안 이어졌지만, 정작 오늘날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건축물은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학교나 전시, 역사서에서 조선시대 궁궐이나 사찰 이야기는 많지만, 고려시대 건축은 자료가 부족하거나 단편적으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려 건축은 기록과 실물이 적을까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려의 건축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고려 건축 기록이 왜 적은지, 현존 유물은 어떤 것이 남아 있는지, 복원 시도와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불교 중심 사회가 건축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건축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이어진 고려 왕조는 동아시아 목조건축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중국 송나라와 거란의 건축 양식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에 맞는 독자적인 비례와 설계 원리를 발전시켰습니다.
문화적 전환점
고려시대(918~1392)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문화적 전환점이었으나, 그 시대의 건축물은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는 주로 목재를 중심으로 한 건축 문화 때문입니다. 목재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부패하고 불에 취약하여 쉽게 소실되었습니다.
건축사 연구에 큰 공백
임진왜란과 같은 대규모 전란과 자연재해는 고려시대의 건축 유산을 대부분 파괴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낸 고려시대 건축물은 극히 드물며, 이는 한국 건축사 연구에 큰 공백을 남겼습니다.
건축 재료의 한계
또한 당시 목재난과 건축 재료의 한계는 대형 건축물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한 목조 건축의 특성상, 정치적 혼란기에는 보존이 더욱 어려웠습니다.
목재 결구법의 정수
봉정사 극락전(12~13세기)과 부석사 무량수전(11~13세기)은 고려 시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오늘날까지 전하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곡선미와 단아함이 어우러진 지붕, 세련된 목재 결구법은 고려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기록이 적은 이유 - 역사적·재료적 한계
목재 건축의 특성
고려시대 건축물의 주재료인 목재는 불에 매우 취약하고 습기에 노출되면 부식되기 쉽습니다. 이로 인해 수백 년 이상 원형 그대로 보존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사계절 기후 변화는 목재 보존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문헌 기록의 부족
고려는 불교 중심 사회였으나,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문헌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려사』 같은 역사서에도 정치적 사건이나 불교 의식에 관한 기록은 풍부하지만, 건축 구조와 설계에 관한 상세한 기술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전쟁과 화재의 피해
몽골 침입, 홍건적의 난, 임진왜란 등 수많은 전쟁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건축 기록과 도면, 설계 자료 대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격변은 물리적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축 지식의 전승에도 큰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한계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기록과 유산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소수의 유물과 발굴 자료를 통해 고려 건축의 특성을 조금씩 밝혀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고려 건축 유물
희소한 목조 건축물
현존하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중수), 수덕사 대웅전(1308년) 등이 있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고려의 목조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실물 자료입니다. 특히 기둥의 배흘림과 지붕의 곡선은 고려 건축 특유의 우아함을 보여줍니다.
석조 건축과 석탑
목조건축이 소실된 반면, 석탑과 석불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 월정사 8각 9층 석탑 등이 있습니다. 석조 건축은 불교적 상징성을 강하게 담고 있어, 당시 불교 건축의 미학을 전하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불화와 벽화
직접적인 건축물은 아니지만, 불화나 고분 벽화에 묘사된 건축 표현은 당시 건축의 형태와 비례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유적과 유물
황룡사 9층 목탑(신라 말~고려 초)의 터와 기단만 남아있지만, 이는 당시 목조건축의 웅장함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고려시대 건축의 기술적 성취와 미적 감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연구의 어려움과 발굴 성과
건축물 자체는 사라졌지만, 발굴된 기단, 주춧돌, 기와 등의 유물은 고려 건축의 규모와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개성 만월대, 강화도 궁궐터 등의 발굴은 고려 왕실 건축의 규모와 배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동시대 건축물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고려 건축의 특징을 간접적으로 유추하는 방법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나라와 교토의 고대 사찰들은 고려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됩니다.
기록과 문헌의 부족 - 건축 설계도와 상세 기록 미비
구전 전통
고려시대 건축 기술은 주로 구전과 현장 실습을 통해 전승되었으며, 상세한 설계도나 문서화된 기록을 남기는 관행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문서 소실
존재했던 기록물도 수많은 전쟁과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고려사, 고려도경 등 일부 문헌에 간략한 언급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체계적 보존 부재
후대 조선시대에 비해 건축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제도가 미비했으며, 이는 현대 연구자들이 고려 건축을 이해하는 데 큰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목재 사용과 건축기술의 변화
목재 선택의 변화
고려 이전에는 주로 참나무를 사용했으나, 고려시대부터는 소나무 사용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소나무는 곧고 가볍지만 강도가 높아 건축에 이상적이었습니다.
짜맞춤 기법 발달
철못을 최소화하고 목재의 특성을 활용한 짜맞춤 기법이 발달했습니다. 이는 건물의 유연성을 높이고 지진에 대한 내구성을 강화했습니다.
비례와 치수 체계
영조척이라는 독자적 측정 단위를 사용해 건물의 조화로운 비례를 계산했습니다. 이 체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건축의 안정성과 미적 균형을 보장했습니다.
불교 건축의 영향
국가적 불교 후원
고려는 국가 차원에서 불교를 적극 후원하여 대형 사찰과 탑 건립이 활발했습니다. 왕실의 지원으로 화려하고 규모가 큰 불교 건축물이 전국에 세워졌습니다.
정교한 목조 기술
불교 건축은 목재 구조의 정교한 짜맞춤과 비례미를 강조했습니다. 복잡한 다포식 공포 구조와 치밀한 목재 결합 기술은 고려 목조 건축의 핵심이었습니다.
종교적 상징성
불교의 우주관과 철학적 개념이 건축 형태와 공간 구성에 반영되었습니다. 만다라의 원리를 적용한 배치와 불교 상징이 장식 요소로 활용되었습니다.
건축적 걸작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등은 동아시아 목조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고려 불교 건축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고려시대 불교 건축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당시의 기술력, 미적 감각, 철학적 사고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결정체였습니다. 비록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는 유산을 통해 고려 불교 건축의 우수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려 건축의 미학
자연과의 조화
고려 건축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 배치를 중요시했습니다. 특히 산과 물의 지형을 활용한 배산임수 원칙과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지리 개념이 건축 배치에 적용되었습니다. 또한 온돌과 마루의 독특한 결합은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으로, 계절에 따른 실내 환경 조절에 탁월한 지혜를 보여줍니다.
절제미와 균형감
단아하고 절제된 선과 비례는 고려 건축의 중요한 미학적 특징입니다. 화려함보다는 안정감과 균형을 추구하며, 목재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색감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특히 처마의 우아한 곡선과 기둥의 비례는 세련된 미감을 보여줍니다.
불교적 세계관의 표현
불교의 철학적 개념과 세계관이 건축 형태와 장식에 반영되었습니다. 사찰 배치에서는 부처의 세계를 상징하는 만다라 원리가 적용되었고, 장식 요소에는 연꽃, 구름, 용 등 불교적 상징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건축물에 깊은 의미와 영성을 부여했습니다.
고려 건축의 빈자리와 의미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물의 부족은 한국 건축사 연구에 있어 큰 난제이자 도전입니다. 이 빈자리는 단순히 물리적 유산의 부재를 넘어, 한국 건축의 역사적 연속성과 정체성 이해에 공백을 만듭니다.
미학적 가치 단서
그러나 남아있는 소수의 유물과 기록은 당시 사회, 문화, 기술에 대한 귀중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같은 현존 건축물은 고려 건축의 기술적 성취와 미학적 가치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전통건축 정체성 회복
고려 건축의 현대적 가치
지속가능한 건축의 원형
고려시대 건축은 자연 친화적 재료 사용과 기후 조건에 맞는 구조로 현대의 지속가능한 건축에 영감을 줍니다. 온돌과 통풍 시스템은 에너지 효율적인 설계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의 원천
고려 건축은 한국 건축의 독창성과 미학적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이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합니다.
건축 기술의 보고
목구조의 정교한 짜맞춤, 내진 설계, 환경 적응형 구조 등 고려시대 건축 기술은 현대 건축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의 보고입니다. 특히 현대 기술과 결합된 전통 공법은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천년의 흔적을 잇다 - 고려 건축 연구와 보존의 미래
고려시대 건축은 목재의 한계와 역사적 소실로 인해 그 흔적이 적지만, 남아있는 유산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그 가치와 미학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같은 현존 건축물은 천년의 시간을 넘어 고려 건축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의 활용
3D 스캐닝,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복원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라진 고려 건축의 모습을 가상으로나마 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제간 연구 협력
고고학, 역사학, 건축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협력하여 고려 건축의 공백을 메우는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건축의 맥락에서 고려 건축을 재조명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화유산 교육
고려 건축의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에게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천년의 흔적을 이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고려 건축 연구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건축의 정체성과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천년의 시간 속에 희미해진 고려 건축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한국 문화유산의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마무리 – 고려 건축, 사라진 것이 아닌 기다리는 것이다
고려시대 건축은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작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하기 때문에 더 큰 연구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고려 건축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유물과 전통, 풍경과 정서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목조건축과 석탑, 불화를 통해 우리는 고려 건축이 지닌 우아한 곡선미, 불교적 세계관, 자연과의 조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복원과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고려 건축의 모습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부석사의 단아한 처마, 장경판전의 깊은 공간, 그리고 디지털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가상의 궁궐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건축은 벽과 기둥만이 아니라, 기억과 철학, 의식과 시간이 만드는 이야기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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