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과 형태의 관계 변화 = 근대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Form follows function! 이 짧고 강력한 문장은 현대 건축사의 흐름을 통째로 뒤흔든 선언이었다. 

19세기 말 미국 시카고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 처음 내놓은 이 문장은, 당시 장식과 과시적 외형에 몰두하던 건축계에 하나의 철학적 전환점을 제시했다. 설리번은 건축이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 본질은 ‘용도’와 ‘기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건축과 디자인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며, 형태와 기능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의 창작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Form follows function"의 탄생

1896년,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이 남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명언은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디자인 세계의 지배적인 원칙이 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건축물이나 제품의 형태는 그것이 수행해야 할 기능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리번의 이 철학은 당시 산업혁명의 기계 미학과 도시화의 새로운 요구사항이 맞물리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장식적인 역사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기능에 충실한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찾고자 했던 당시의 시도는 이후 근대 디자인과 건축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896년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개념 등장

1900년대 초

아르누보와 공예운동의 영향

1920년대

바우하우스 설립과 기능주의 확산

1930년대

국제주의 양식의 본격적 등장


근대주의의 이상: 기능주의와 순수성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Bauhaus)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원칙을 교육과 실천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 철학은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에 충실한 순수한 형태를 추구했습니다.

이 시기 디자인은 산업 생산에 적합한 표준화와 합리성을 중시했으며, 보편적인 디자인 언어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한 환경과 제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과 시그램 빌딩(1958)과 같은 작품들은 구조의 솔직한 표현과 기능적 명료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능주의 원칙

형태는 기능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어야 하며, 불필요한 장식은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실용성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바우하우스의 영향

예술과 기술의 통합, 대량생산을 위한 디자인,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바우하우스의 교육은 현대 디자인 교육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미니멀리즘

본질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순수한 형태와 공간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근대 건축의 핵심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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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양식의 확산과 일상화

1930년대부터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현대 도시 경관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 양식은 지역적 특성보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우선시하며, 기능적 합리성과 구조적 명료함을 추구했습니다. 철과 유리,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건축 재료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한 이 스타일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대적 도시 이미지를 창출했습니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는 그의 '새로운 건축을 향한 5가지 요점'을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로, 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가로창, 자유로운 입면 등 기능에 충실한 형태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 건축가들은 형태와 기능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성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과 도시를 설계했습니다.

순수한 형태

장식 없는 기하학적 형태

새로운 재료

철, 유리, 콘크리트의 활용

구조적 솔직함

건축 구조의 명확한 표현

기능적 합리성

목적에 충실한 공간 구성



비판의 시작: 근대주의의 한계

1960~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근대주의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형태와 기능의 직접적 연결을 강조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실제로는 인간의 심리적, 문화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근대적 도시계획이 실제 도시 생활의 활력과 다양성을 파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로버트 벤추리(Robert Venturi)는 "건축의 복잡성과 모순"에서 근대주의의 단순성과 합리성에 반기를 들며, 건축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근대주의가 추구한 '보편적 해결책'이 실제로는 다양한 맥락과 문화적 배경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심리적 단조로움

근대주의 건축은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의 심리적 욕구와 정서적 필요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획일적인 디자인은 지역성과 개성을 무시하고 사용자들에게 소외감을 주었습니다.

도시계획의 실패

프루이트 이고(Pruitt-Igoe) 주택단지와 같은 근대주의적 대규모 주거단지는 범죄와 고립의 온상이 되었고, 결국 많은 사례가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이는 기능만을 고려한 디자인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인간적 요소의 결여

근대주의 건축은 인간의 감성, 역사, 문화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디자인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성적이어서 일상적 사용자와의 연결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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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디자인에서의 실험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형태와 기능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복잡한 형태를 생성하고, 이러한 형태가 다양한 기능적 요구에 대응할 수 있게 했습니다.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나 비야르케 잉겔스(BIG)의 작품들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형태와 공간 구성을 실현했습니다.

또한 환경적, 사회적 기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건축과 디자인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스테파노 보에리의 보스코 베르티칼레(이탈리아, 2014)는 건물 외관에 식물을 통합함으로써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현대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의 경계를 넘어 다층적인 목적에 부응하는 혁신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시각 차이

형태와 기능의 관계는 동양과 서양에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서양의 근대주의가 기능적 합리성과 보편성을 추구했다면, 한국과 일본같은 동양 문화에서는 기능에 정서적, 영적 차원을 통합하는 접근이 발전했습니다.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는 콘크리트의 차가운 물성과 빛을 통한 정서적 체험을 결합하며 기능을 초월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토 도요는 "건축은 바람과 같아야 한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경계가 모호하고 유동적인 공간을 추구하며,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선 접근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동양적 접근은 형태와 기능이 분리된 요소가 아닌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한국의 현대적 해석

한국 건축에서는 전통적 공간 개념인 '마당'과 같은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기능적 요구와 문화적 연속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접근이 발전해 왔습니다.

일본식 미니멀리즘

장식적 요소를 최소화하면서도 자연 재료의 질감과 빛의 변화를 중시하는 일본의 미니멀리즘은 서양의 기능주의적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정서적 깊이를 추구합니다.

중국의 상징적 공간

중국 전통 정원은 기능적 공간을 넘어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미학적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러한 관점은 현대 중국 건축가들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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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형태'와 '기능'의 관계

오늘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원칙은 더 이상 절대적인 공식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현대 디자인은 기능을 단순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 정서적, 문화적, 환경적, 사회적 차원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형태 역시 이러한 다층적 기능에 응답하는 복잡한 해결책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디자인은 더욱 반응적이고 적응적인 형태와 기능의 관계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디지털 기술과 신소재의 발전,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관점의 통합은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좋은 디자인'이란 형태와 기능 사이의 일방향적 관계가 아닌, 둘 사이의, 그리고 디자인과 그것이 놓이는 세계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맥락적 접근

절대적 원칙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른 유연한 해석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장소, 문화,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이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가치의 균형

기능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심미적 풍요로움, 환경적 지속가능성, 사회적 포용성 등 다양한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접근이 요구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

인공지능, 반응형 소재, 바이오디자인 등 신기술은 형태와 기능이 고정된 관계가 아닌 상호작용하고 진화하는 관계로 재정의될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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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의 다양성: 형식과 기능의 재구성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형태와 기능’ 사이의 관계는 어느 한 방향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면적입니다. 

기술의 발전,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글로벌 문화의 교차 속에서 건축은 다시금 ‘다층적인 의미’를 품게 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곡선미 넘치는 건축물은 전통적인 기능주의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조형적 실험을 보여주며, 동시에 새로운 구조 기술과 디지털 설계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반면,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S,M,L,XL』 같은 저작을 통해 도시 맥락과 프로그램의 복잡성을 중시하며, 형태보다는 콘텐츠와 전략으로 건축을 설명하려 합니다. 또한, 현대의 그린 아키텍처나 적응형 건축(adaptive architecture)은 기능을 단지 물리적 사용에 국한하지 않고, 에너지 효율, 생태계와의 공존, 사회적 유연성 등으로 확대하며, 새로운 의미의 기능주의를 만들어가고 있읍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형태는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의 산물이 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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