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힘(Fold)과 주름(Pleat)의 미학 – 건축과 패션이 공유하는 조형 언어

우리가 흔히 접힘(Fold)과 주름(Pleat)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사실 매우 원초적이면서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종이를 접는 행위에서 시작해, 옷감을 주름잡고, 금속이나 콘크리트 표면에 패턴을 새기는 것까지—접힘은 재료를 변형하고 새로운 공간성을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접힘(Fold)’과 ‘주름(Pleat)’은 단순히 재료를 변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간을 재구성하는 조형 언어이자, 움직임과 유연성을 표현하는 미학입니다. 

건축에서는 오리가미 구조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패션에서는 플리츠 스커트와 이세이 미야케의 혁신적인 주름 철학이 이를 체현합니다.




접힘은 단순한 형태가 아닌 철학이다

접힘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 아닌,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그의 저서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에서 접힘을 통해 무한한 연속성과 유동성을 설명했습니다. 들뢰즈에게 접힘은 고정된 중심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의 개념이었습니다.

건축과 패션의 사유도구

건축과 패션 분야에서 접힘은 경계와 구분을 허물고, 구조와 표면, 내부와 외부를 융합하는 사유의 도구로 작용합니다. 이는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공간과 형태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미학적 탐구의 출발점이 됩니다.

과정과 변화 중시

접힘은 분리된 요소들을 연결하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창출하며, 고정된 형태보다는 과정과 변화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현대 디자인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건축 속의 접힘 – 구조와 표면을 재해석하다

건축적 접힘의 철학

그렉 린(Greg Lynn)과 같은 건축가들이 발전시킨 '폴딩 아키텍처(Folding Architecture)' 개념은 벽, 바닥, 천장이 하나의 연속면으로 융합되는 새로운 공간 경험을 제시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직각 구조를 탈피하여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을 창출합니다.

블롭 아키텍처와의 연계

접힘 기술은 복잡성과 유기적 형태를 창출하며, 디지털 설계 도구의 발전과 함께 '블롭 아키텍처(Blob Architecture)'라는 새로운 건축 언어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유기적 형태와 구조적 효율성을 건축에 적용하는 시도입니다.

경계의 모호화

베를린 레오나르도 글래스 큐브와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유리와 백색 웹 구조가 접히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이는 관람객들에게 다차원적인 공간 경험을 제공하며, 전통적인 건축 요소의 기능과 의미를 재정의합니다.


접힘을 통한 건축 디자인은 구조적 혁신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는 정적인 건물이 아닌, 유동적이고 반응하는 환경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건축을 이끌고 있습니다.





오리가미 구조(Origami Structure)의 과학적 잠재력

건축에서 오리가미 구조는 ‘가볍고, 접을 수 있으며, 펼쳤을 때 강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특성을 극대화합니다. 얇은 재료를 접음으로써 발생하는 삼각형과 다각형의 패턴은 압축과 인장에 강한 형태를 만들어 냅니다.

이동식 파빌리온

긴급 재난 구호 시설이나 야외 전시 공간에서 오리가미 구조는 쉽게 접어 이동할 수 있고, 현장에서 빠르게 펼쳐 조립할 수 있습니다.

천체망원경과 우주 건축

NASA는 태양전지 패널이나 우주 거주 모듈을 오리가미 접힘 원리로 설계하여, 작은 로켓 적재 공간에 넣었다가 우주에서 크게 펼치는 방식을 실험했습니다.

도시 파빌리온

일본과 유럽의 실험적 건축가들은 종이·플라스틱·알루미늄 시트 등을 활용해 오리가미 형태의 그늘막, 전시관, 조형 파빌리온을 제작하며, 접힘을 구조 자체의 언어로 제시했습니다.


주름진 외벽과 파사드 디자인

빛과 그림자의 리듬

주름진 파사드는 태양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명암을 만들며, 건물에 시간성을 부여합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

Zaha Hadid Architects(ZHA)나 UNStudio 같은 현대 건축가들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CNC, 3D 프린팅, 레이저 컷팅)을 통해 주름진 패널을 정밀하게 제작, 표피를 직물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사례

두바이, 서울, 런던의 상업 건물 파사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결치는 입면’은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자연 환기·햇빛 조절·도시 맥락의 상징성까지 담아냅니다.




플리츠의 역사와 의미

주름의 역사는 인류 의복 문화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키톤(Chiton)과 토가(Toga)에서부터 현대 패션까지, 주름은 의복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플리츠의 역사

주름은 오래된 패션 기법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린넨 드레스, 그리스의 키톤, 일본의 기모노 등은 모두 주름을 통해 움직임과 우아함을 표현했습니다. 주름은 직물이 단순히 ‘덮는 천’에서 벗어나 몸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확장되는 과정이었습니다.

플리츠의 의미

역사적으로 주름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권력, 신분, 미적 가치의 상징으로 작용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교한 러프 칼라나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주름 의상은 착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산업혁명과 대중화

산업혁명 이후, 주름 생산의 기계화가 이루어지면서 플리츠는 대중화되었습니다. 마리아노 포르투니(Mariano Fortuny)의 델포스 드레스와 같은 혁신적 디자인은 20세기 초 주름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장했으며, 이는 현대 디자이너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패션 속의 주름 –  움직임과 유연성의 미학

패션에서 주름은 정적인 천을 동적인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키는 마법과도 같습니다.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의 획기적인 'Pleats Please' 시리즈는 주름을 통해 의복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했습니다. 이 컬렉션은 주름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착용자의 움직임과 신체 곡선을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살아있는 표면임을 보여줍니다.

움직임의 예술

주름은 정적인 직물에 동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착용자가 움직일 때마다 주름은 확장되고 수축하며,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을 생성합니다.

몸과의 대화

플리츠 의상은 몸을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감싸며,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춤을 추듯 반응합니다. 이는 의복과 인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정의합니다.

현대적 재해석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와 같은 현대 디자이너들은 접힘과 드레이핑 기법을 실험적으로 발전시켜, 전통적인 주름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의 혁신 – 'Pleats Please'

혁신적 제작 과정

미야케는 전통적인 플리츠 방식을 뒤집어, 먼저 옷을 제작한 후 특수 프레스 기계로 주름을 만드는 혁신적인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더 정확하고 내구성 있는 주름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재와 기술의 결합

1993년 시작된 'Pleats Please' 컬렉션은 폴리에스터 소재와 특수 열처리 기술을 결합해 가볍고 구김이 가지 않으며, 세탁이 용이한 주름 의상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혁신이었습니다.

영구적 주름 가공

옷을 만든 뒤 고온 열처리로 주름을 잡아내는 방식으로, 세탁·활동 후에도 형태가 유지됩니다.

일상과 예술의 결합

가볍고 실용적이면서도 조각 같은 실루엣을 만들 수 있어, 옷이 생활 속에서 예술적 경험이 됩니다.

움직임의 해방

주름은 몸의 움직임에 반응해 옷이 펼쳐지고 접히며, 입는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에 포함시킵니다.

글로벌 영향력

미야케의 플리츠 작업은 전 세계 패션계에 접힘과 주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수많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뮤지엄 컬렉션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옷은 살아있는 조각품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입고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  이세이 미야케 (1938-2022)

 



 

건축과 패션의 공통 언어 – 접힘과 주름의 대화

건축과 패션은 겉보기에 매우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접힘과 주름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두 분야 모두에서 접힘은 형태와 기능, 미학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디자인 전략으로 활용됩니다.

구조와 유연성의 결합

  • 건축: 접힘은 구조적 강도를 만드는 방법(삼각형·폴딩 패턴).

  • 패션: 주름은 움직임과 유연성을 주는 방법.
    두 분야 모두 접힘을 통해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능을 창출합니다.

표면과 시간성

주름은 빛과 그림자를 만들고, 시간에 따라 공간·옷의 표정을 바꿉니다. 건축 파사드의 주름진 패널과 플리츠 스커트의 물결치는 주름은 시간에 따라 살아있는 표면이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철학적 의미

  • 건축에서는 ‘접힘’이 곧 내부와 외부, 질서와 혼돈을 연결하는 은유

  • 패션에서는 ‘주름’이 몸과 옷, 개인과 사회를 잇는 언어



협업과 융합 – 직조된 건축, 건축적 의복

현대 디자인 분야에서는 건축과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과 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연구자 케일라 오웬(Kayla Owen)은 가죽 의복과 건축적 구조의 결합 실험을 통해 두 분야 간의 창의적 교차점을 탐색했습니다.

재료의 교차

건축에서 사용되는 단단한 소재들이 패션에 도입되고, 패션의 유연한 직물 기술이 건축 표면 처리에 활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료적 교차는 양쪽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기술의 공유

3D 모델링,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파라메트릭 디자인과 같은 기술적 도구들은 건축과 패션 모두에서 활용되며, 이를 통해 더욱 정교하고 혁신적인 접힘 구조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학제간 연구

세계 각국의 디자인 학교와 연구 기관에서는 건축가와 패션 디자이너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워크숍과 프로젝트를 통해 학제간 연구를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양쪽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언어를 차용하며 협업

오리가미 파빌리온 × 패브릭 디자인

건축 전시에서 패브릭 아티스트와 건축가가 함께 만든 종이·섬유 기반의 접힘 구조물

패션쇼 런웨이 무대 건축

샤넬, 디올 등은 런웨이 무대를 건축적 공간으로 설계해, 패션의 접힘·주름을 공간적 경험으로 확장

웨어러블 건축

건축적 구조를 몸에 착용 가능한 형태로 실험하는 프로젝트. 플리츠 원리를 활용해 펼치면 텐트가 되고 접으면 의복이 되는 ‘이동식 건축 패션’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결국 건축과 패션은 서로의 언어를 빌려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창조하고 있으며, 접힘과 주름은 그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의미 – 디지털 시대의 접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접힘과 주름의 개념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습니다. 3D 프린팅과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기술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복잡한 접힘 구조를 구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3D 프린팅, CNC 밀링, 레이저 커팅 기술은 접힘과 주름을 디지털 언어로 번역합니다. 설계자는 알고리즘으로 접힘 패턴을 만들고, 기계는 정밀하게 재료를 잘라내거나 접어 공간을 구성합니다.

지속가능성과 접힘

접힘 구조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효율을 만들어내는 방식이기에, 친환경적 건축과 패션의 중요한 해법이 됩니다.

  • 접히는 건축 모듈 → 물류·운송 비용 절감

  • 영구적 주름 가공 패션 → 세탁·관리 비용 절감

메타버스와 가상 패션

디지털 환경에서도 접힘과 주름은 중요한 시각적 요소입니다. 3D 모델링·게임·메타버스 아바타 디자인에서 현실적인 주름 표현은 사실감을 높이고, 디지털 패션 브랜드들은 접힘을 가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스마트 소재와 인터랙티브 디자인에서 접힘의 역할 확대입니다. 환경 변화에 반응하여 형태가 변하는 '4D 프린팅' 기술이나,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변형되는 적응형 건축 구조 등이 그 예입니다.



접힘과 주름, 그리고 우리의 삶

접힘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인간의 삶과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한 언어입니다. 변화하는 환경과 필요에 맞춰 형태를 바꾸는 접힘의 특성은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적응성을 상징합니다.

적응과 변화

건축과 패션에서 접힘은 변화하는 사회·문화·기술에 대응하는 혁신적 도구로 활용됩니다. 접힘 구조는 용도와 환경에 따라 변형되며, 이는 현대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합니다.

새로운 경험

접힘을 통해 창출되는 공간과 형태는 사용자에게 새로운 감각적, 정서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우리가 공간과 의복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철학적 사유

접힘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철학적 사유를 촉진합니다. 내부와 외부, 구조와 표면, 기능과 미학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통합적 사고방식을 장려합니다.


접힘과 주름의 언어는 계속해서 진화하며, 우리의 미래 환경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는 기술적 혁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접힘과 주름의 무한한 가능성

건축과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접힘과 주름의 예술적·과학적 여정은 계속됩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형태적 실험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미래를 바꾸는 혁신과 융합의 과정입니다.

접힘은 끝없는 창조와 변화를 위한 철학이자 언어입니다. 그것은 고정된 형태가 아닌, 계속해서 펼쳐지고 접히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열린 과정입니다. 접힘의 미학과 과학은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접힘은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행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더 유연하고 적응적인 미래를 상상하게 합니다."


 


마치며 – 주름진 표면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

접힘과 주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재료와 구조, 움직임과 시간, 그리고 철학과 미학을 동시에 담아내는 언어입니다.

건축에서는 오리가미 구조와 주름진 파사드로 강도와 리듬을 만들고,패션에서는 플리츠 스커트와 ‘Pleats Please’ 시리즈로 움직임과 해방을 표현합니다.

접힘은 경계를 넘나들며, 건축과 패션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결국 Fold & Pleat은 시대와 분야를 넘어, 우리 삶의 미학적 풍경을 형성하는 핵심 조형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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